[봉사체험기] 태안에 ‘30만명의 기적’ 필요하다
환경운동연합 시민구조단 자원봉사 참여 현장

▲15일 태안 신두리 갯벌에서 환경운동연합 1차 시민구조대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으로 오염된 갯벌의 돌을 닦아내고 있다.©뉴스미션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는 다하고 싶어요.” 15일 새벽 태안반도로 향하는 환경운동연합 1차 시민구조단 8호차 버스 안, 자원봉사자들의 눈빛은 맑았다.

‘놀토’(학교를 쉬는 토요일)를 맞은 고1 학생부터 수능이 끝난 고3, 20대 대학생부터 40대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은 나이 성별 상관없이 다양했다. ‘휴일의 달콤한 늦잠’ 대신 ‘찬바람 부는 기름지옥의 현장’을 택한 이들의 얼굴에선 ‘버스 여행의 설레임’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8호차 인솔자인 환경운동연합 마용운 간사가 전해주는 ‘방제작업 중 주의사항’을 묵묵히 새겨들을 뿐이었다.

여기가 바로 전쟁터…, ‘전해 들은 현장’이 ‘실황’으로

오전 9시30분경, 버스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갯벌에 도착했다. 신두리 갯벌은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됐고 수많은 희귀생물이 서식한다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신두리의 아름다운 갯벌은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렸다.

▲버스에서 막 내린 자원봉사자들이 방제복과 마스크 등을 지급받고 있다. ©뉴스미션

갯벌에서 20m 정도 떨어진 해안가 벌판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는 오전 내내 분 단위로 버스가 도착해 자원봉사자들을 쏟아냈다. 이날 환경운동연합의 주도로 이곳에 투입된 자원봉사자의 수는 약 3천명. 같은 버스에 탑승했던 40여 명 단위로 방제복을 입은 채 일사불란하게 뛰어다니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흐린 날씨, 습한 공기를 타고 비릿한 냄새가 사정없이 코를 찔러왔다. 유류지원대에서 군 생활을 하며 수도 없이 맡았지만 결코 친숙해질 수 없었던 그 냄새, 바로 기름 냄새였다.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현장이 ‘실황’이 되자 버스에서 내린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부직포로 된 방제복과 고무장화, 방진마스크, 목장갑이 자원봉사자들에게 지급됐다. 방제복을 입고 방진마스크를 착용하니 약간의 답답한 느낌과 함께 ‘이제 투입이구나’라는 실감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투입 직전, 환경운동연합의 요청으로 자원봉사자 100명의 소변을 채취했다. 기름오염지역에 노출됐을 때 인체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안전은 물론, 지역주민들이 나중에 피해 보상을 받을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이었다.

온통 ‘기름 코팅’, “수작업 외에 다른 제거 방법 없다”

방제복 착용 후 마용운 간사의 안내를 받아 8호차에 할당된 방제구역으로 이동했다. 갯벌 쪽으로 다가갈수록 기름 냄새는 점점 더 역해졌다. 서둘러 마스크의 머리끈을 조였다.

2차선 도로를 하나 넘으니 바로 기름 공격을 받은 갯벌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천지가 온통 검은색이었다. 썰물로 물이 빠져나간 갯벌엔 끈적거리는 기름만 남아 있었다. 오염범위가 상상을 초월했다. ‘1만여 톤’이라던 기름 유출량이 그제서야 ‘얼마나 어마어마한 양’인지 느껴졌다.

▲갯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제거 활동에 여념이 없다. 이날 환경운동연합 주도로 신두리에 투입된 자원봉사자는 3천여 명에 달한다. ©뉴스미션

이날 자원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은 아주 단순했다. 기름에 오염된 갯벌의 돌과 바닥을 깨끗이 닦는 일이었다. 흡착포와 면 성분의 옷가지 외에는 일체 다른 도구가 주어지지 않았다. 마용운 간사는 “유화제 등 화학약품을 써서는 돌 하나하나를 깨끗이 닦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차 오염과 자원봉사자들의 건강이 우려된다”며 “원시적이긴 하지만 수작업외에는 기름을 제거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창 작업 중이던 다른 자원봉사자들의 틈에 끼어 자리를 잡고 돌을 닦기 시작했다. 휘발성 물질이 대부분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린 상태여서 피부와 눈 자극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다만 원유의 아스팔트 성분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돌들을 깨끗이 닦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가쁜 호흡으로 인해 방진마스크가 흥건히 젖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기름 냄새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코앞에서 맴도는 기름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원유의 아스팔트 성분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신두리 갯벌의 돌들 ©뉴스미션

냄새보다 더 방제작업을 힘들게 한 것은 매서운 추위였다. 세찬 바닷바람은 가차 없이 얇은 방제복을 뚫고 서서히 스미는 독처럼 옷 안으로 침투했다. 방제작업을 시작한지 1시간도 채 안되어 몇몇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손발에 동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바람 막을 곳 하나 없는 바닷가 벌판에서 급하게 식사를 한 몇몇 자원봉사자들은 위장장애로 고생하기도 했다.

결국 자원봉사자들의 건강을 염려한 환경운동연합은 예정보다 1시간 이른 오후 3시에 작업 철수를 결정했다. 환경운동연합 간사들이 확성기로 작업 철수를 알렸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하나의 돌이라도 더 닦고 가려고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차량 문제로 가장 늦게 도착한 대구 환경운동연합 자원봉사자들은 “가장 늦게 온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나겠다”며 오히려 방제작업에 더 박차를 가했다.

‘30만명의 기적’ 필요해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제거 작업에 열심이다. 이날 작업은 오후 3시까지 진행됐다.©뉴스미션

이날 10시간 여의 힘든 방제작업을 마친 3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태안의 주민들에겐 그 ‘기름지옥’이 바로 ‘일상’이다. 이미 일부 태안 주민들이 방제작업으로 인한 누적된 피로로 쓰러졌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10년 전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6천 톤의 중유가 일본 후쿠이현 앞바다를 오염시켰다. 복구엔 몇 년이 걸릴지 몰랐고,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연인원 3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2달 반에 걸쳐 자갈 하나하나의 기름까지 모두 깨끗이 닦아낸 것이다. 일본은 이를 ‘30만명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2007년 한국의 태안반도에도 ‘30만명의 기적’이 필요하다.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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